//BYLINE// “노량진은 섬이에요.” 검은 가방을 끌어안고 나직이 읊조리던 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세상과의 철저한 단절이 이루어지는 곳, 고독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곳. 스멀스멀 사람을 삼켜버리는 듯한 이미지가 꼭 버뮤다 삼각지대를 닮았다. 도심 한복판에 고립돼버린 섬. 그곳의 삶이 궁금해 3일 동안 노량진 고시촌의 아침을 쫓았다.
/백팩을 등에 업고 고시학원으로 향하는 고시생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사진 최지연 기자
S#1. 노량진역 (오전 6:30)
노량진역에서 거리로 나오는 길은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몇몇 무리가 바쁜 걸음으로 고시학원을 향해 걷는다. 고시학원 대다수는 7·9급 공무원, 경찰, 소방, 임용, 재수를 위한 곳이다. 동작구청 부근부터 수산시장 삼거리까지 큰 길을 중심으로 포진해있다.
이제 갓 해가 밝기 시작한 길가.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백여 개의 고시원과 자취방에서 넘쳐흐른 쓰레기도 있지만 대부분은 값싼 주점에서 밤새내 술을 마신 직장인들의 흔적이다. 환경미화원은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에 걸쳐서야 대로변의 쓰레기를 치운다고 했다.
S#2. 고시식당 (오전 7:30)
제법 높다란 학원건물에는 고시식당이 딸려있다. ‘아침식사 : 6시 30분~9시’라고 적힌 하얀 종이가 눈에 띈다. 길가를 걸어보니 이 시간에 문을 연 식당은 김밥집, 동네빵집, 패스트푸드점 정도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컵밥을 파는 아주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고시생으로 보이는 한 남성의 뒤를 따라 고시식당에 들어섰다. 기자의 뒤를 따라 젖은 머리에 후드티를 걸친 남녀가 줄을 서 들어온다.
한 끼 식사가격은 4500원. 나름 ‘준비’해온 현금을 내밀자 아저씨는 토끼눈을 뜨고 기자를 쳐다본다. 대다수가 정기권을 끊은 후 지문인식으로 입장하는 탓이다. 10회권을 끊으면 3600~3900원 정도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단다. ‘리틀 계절밥상’으로 불리는 규모 있는 고시식당. 반찬은 김치, 오이지, 갈비찜, 김치찜, 동태전, 달걀프라이 등 7~8여 가지다. 한편에는 스프와 소고기무국, 식빵, 우유, 주스, 시리얼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입맛 없는 학생을 위한 라면과 뜨거운 물까지 준비돼있다.
일정 간격을 두고 떨어져 앉은 이들은 스마트폰을 보거나 식판에 고개를 묻은 채 밥을 먹는다. 어색한 분위기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 경쾌한 댄스곡이 울려 퍼진다.
식사를 마쳤지만 뭔가 이상했다. 식사인원이 지나치게 적어서다. 주인아저씨는 “아침에는 학생들 밥 잘 안 먹어요. 점심, 저녁에는 아주 바글바글하지” 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고시식당이든 어디든 ‘아침밥’을 챙겨먹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다. 대신 1000~2000원대의 저렴한 버블티나 생과일주스가 인기다. 저렴하면서도 빠르고 쉽게 배를 채울 수 있는 먹거리다.
S#3. 고시학원 자습실 (오전 8:00)
학생들이 자연스레 발길을 옮기는 곳은 고시학원 자습실(빈 강의실)이다. 옆 강의실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9시 수업이 시작하기 한 시간 전인데도 자습실의 반은 꽉 찼다. 옆에는 두 세권의 두꺼운 책들이 탑을 이룬다. 물이나 에너지음료 한 병은 필수옵션. 옆자리는 사람 대신 책이나 정적이 채운다.
옆자리 학생은 “적어도 3시간 전에는 강의실에 도착해야 앞자리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눈뜬 직후 강의실로 달려와 자리를 맡는다. 그 후에야 근처에서 허기를 채우고 자습을 하다 수업을 듣는단다. 매일이 전쟁하는 기분일 테다.
틈을 타 들른 화장실에는 길게 줄을 선 학생들이 기자를 힐끗 쳐다본다. 화장을 한 탓이다. 핏기 없는 맨얼굴에 머리를 질끈 묶은 그들에게 드라이한 머리, 화장한 얼굴은 낯설기만 하다.
S#4. 코인노래방 (오후 12:00)
점심시간. 온갖 식당에 밀물처럼 고시생들이 밀려든다. 식사를 마친 고시생들이 여가를 즐기는 방법은 두어 가지다. 근처 ‘사육신공원’에 올라 광합성하기, 길가에 널린 코인노래방에서 소리 지르며 노래하기다. 노량진 거리에는 유독 코인노래방이 많다. 최소 열 곳은 넘을 것이다. 임창정, 브라운아이드소울 등 실력파 발라드가수의 노래구절이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목청을 찢듯. 음정은 상관없다. 이것은 분명 ‘분출’을 위한 노래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