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LINE//
#S5. 사육신공원 (오전 6:30)
취재 이튿날 아침. 햇살이 갓 발을 내민 사육신공원에 고시생 ㅅ과 동행했다. 얌전한 차림의 여학생이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자세히 보니 학원교재다. 한순간도 맘이 편할 리 없다. 공원 너머에는 고층 아파트가 길게 뻗어있다. 노량진은 치열하고 가난하기까지 한 이미지를 지녔지만 실제로는 근처에 한강이 펼쳐져있는 교통의 요지. 저 정도 고층 아파트에 살려면 꽤나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다. “저기 사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고 중얼거리니 ㅅ이 “직장인도 그런 걱정을 하느냐”고 묻는다. 그들은 단지 ‘직장인’으로 사는 날만을 꿈꾸며 매일을 산다.
2년째 노량진에서 고시를 준비하는 그에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불안’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고시생 모두의 답과 다름없단다. ‘합격’에 대한 불안감. 확신할 수 없으니 부모님의 관심도 친구들의 격려도 모두 짐일 뿐이다. SNS는 진작 끊었다. 아예 2g폰을 쓰는 친구들도 있다. 점점 고립되는 것은 당연하다. 외로움도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노량진 골목을 빼곡히 메운 고시원과 자취방들. 사진 최지연 기자
고시생들은 외로울 때면 바로 옆 동네인 용산 영화관에 가 기분전환을 하거나 그마저 부담스러울 경우 근처 한강에 나가 슬슬 걷다 온다. 외로움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여학생들은 부실한 식사와 무리한 공부로 장염, 위염에 걸려 노량진생활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일쑤란다. 새벽에 응급실에 실려 가는 바람에 어머니가 지방에서 달려온 경우도 있었다. 가뜩이나 예민해질 시기라 탈이 나기는 더욱 쉽다. “자신에 대한 컨트롤이 가장 중요해. 끝없이 독해져야지.” 하던 ㅅ의 독백은 묘하게 가슴 아프다.
외로운 그들은 손을 잡고 스터디를 한다. 고시공부에 대한 스터디는 기본, 기상 스터디, 식사 스터디, 공부시간 인증 스터디, 출석 스터디 등 종류도 다양하다. 핵심은 ‘관계성’ 부여다. 혼자만의 의지로는 어려우니 타인의 눈을 빌려 성실해지겠다는 다짐이다.
매일 매시간을 붙어있다 보니 정분이 나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게 커플이 생기면 남은 사람들은 더욱 외로워진다. 애인이 있는 사람과 바람을 피우는 일도 생기고 자칫 스터디가 ‘섹터디’로 변질되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ㅅ은 “숫기 없어 보이는 여자애한테 수업자료 좀 챙겨주고 커피 몇 번 챙겨주면 금방 넘어 온다”며 익살맞은 표정을 짓는다. 자신이 여자를 잘 꼬셔서가 아니란다. 서로가 적인 이 공간에서, 지독한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다 보면 어찌어찌 그리 된다는 얘기다. 데이트라고 편하겠나. 마냥 웃을 얘기는 아니다.
그는 “노량진 모텔들이 얼마나 인기 만점인지 아냐”며 주말에는 늘 만실(滿室)이라는 대로변 건물을 손으로 가리킨다. 좁은 고시촌에 울리는 들썩거리는 소리, 신음소리.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느껴졌다.
S#6. 버거킹 (오전 8:00)
ㅅ의 스터디원이자 동생인 선근(남·24)을 불러 고시생들의 ‘핫플레이스’라는 버거킹에서 함께 아침을 먹었다. 버거킹 2층은 공부하는 고시생들로 거의 만석이었다. 식사보다는 스터디가 주목적이다.
선근은 대학재학 중 노량진에 터를 잡았다며 자신을 소개한다. 그 역시 임용고시생이다. 군대를 다녀온 후 임용고시에 붙은 친구들이 대폭 늘어난 사실에 자극을 받아 지방에서 짐을 싸들고 올라왔단다. 선근이 사는 곳은 고시원 ‘옥탑방 위 옥탑방’이다. 옥탑방 월세가 40만원인데 한 번 더 올라야 나오는 이곳은 34만원에 널찍하기까지 해 만족스럽다고. 더울 땐 더 덥고 추울 땐 더 추운 옥탑방이지만 잠자는 시간 외에는 집에 있을 일이 없기에 괜찮다.
선근은 5시 30분에 일어나 6시~6시 30분 사이 학원으로 향한다. 자리를 맡아 놓고 지하 고시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핫식스를 사서 수업이 시작되는 9시 전까지 빈 강의실에서 공부한다. 오후 1시까지 수업을 받으면 교육학스터디에 참여한다. 스터디가 없는 날엔 독서실행이다.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월 18만원 짜리 독방을 끊었다. 7시~7시 30분 정도에는 월권을 끊어놓은 또 다른 고시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9~10시에는 귀가, 새벽기상을 위해 잠자리에 든다.
고시생들은 한 달에 얼마를 쓸까. ‘기본 150만원 이상’이라는 대답에 귀를 의심했다. 학원비 30~60만원, 밥값 20만원, 월세 40만원, 독서실 20만원, 그리고 기타 용돈을 합치면 150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것이다. 사회초년생 친구들이 벌고 있는 돈을 고스란히 지출하는 셈. 1년이면 1500만원이 넘어가는 큰돈이다. 부모에게 받기도 어렵고 미안한 돈이지만 사회에 나가 직접 갚는다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액수다.
집안사정이 좋지 못한 친구들은 학원 조교를 하거나 독서실·고시원 총무를 맡는다. 편의점에서 알바 하는 이들도 꽤 있다. 학원조교는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총무 월급은 매우 적지만 공부할 공간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인기 만점이다. 불법이긴 하지만 인터넷 강의 돌려 듣기는 고시생들의 생존을 위해 일상화된 일이다. “절박한 아이들이 정말 많아요.” 선근은 지방 고시생 친구들은 엄청난 비용에 상경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곳 고시촌에도 빈익빈 부익부는 건재하고 있었다. 씁쓸했다.
<DAY 3>
S#7. 공무원학원 (오전 6:30)
노량진에서 보내는 마지막 아침. 북적이는 공무원학원건물에 들어갔더니 사물함 위에도, 휴게실 소파에도, 복도의 간이의자에도 하얀 종이를 든 학생들이 창백한 얼굴로 뭔가를 외우고 있다. 어제, 그제와 같은 풍경. 익숙해질 법도 한데 숨이 턱턱 막힌다. 무작정 대로변으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S#8. 노량진 대로변 (오전 9:00)
그들이 갑갑할 때 찾는다는 사육신공원과 한강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걸어본다. 거리에는 무심히도 평화로운 햇살이 흐른다. 그들이 꾸는 악몽과 불안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심호흡을 크게 했다. “노량진 생활의 데드라인(dead line)은 언제로 잡았어?” 나의 질문에 모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해 안에 나가야지” 대답한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
“고시에 붙으면 꼭~.” 그들이 습관처럼 내뱉는 말이다. 영화 마음껏 보기, 운동하기, 맘 편히 데이트하기.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이들에게는 그토록 갈망하는 꿈이다. “비록 일상이 진부하고 사회가 각박할지라도.” 그들은 말한다. “합격이라는 희망고문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