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LINE// 마포대교에 다닥다닥 붙은 자살방지문구. 실제 자살방지에 효과적인지 의견은 분분하다. 어찌 됐든 중요한 사실은 한강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이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자살시도인원은 3년 전보다 무려 두 배 증가했단다.
한 나라의 가장 어두운 실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 바로 ‘국민 자살률’ 아닐까. 스스로 생명을 포기할 만큼 각박한 사회. 그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통계청이 지난달 23일 발표한 ‘2014년 사망원인 통계’에 의하면 20~30대 사망원인 1위는 자살. 10대, 40대, 50대 사망원인 2위 역시 자살이다. 그들은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 최근 6개월 간의 자살사고보도를 통해 연령별 자살원인을 짚어봤다.
※ 포털 ‘네이버’ 기준. 6개월의 기간 설정 후 ‘자살’ 키워드로 나오는 4만5393건의 뉴스 중 실제 자살시도로 사망한 사건을 걸렀다.
# 중장년층, 생계 책임지기 힘들어 자살 택했다
총 수치로 보면 언론에서 가장 많이 다룬 자살연령은 40~50대 중년층이다. 신변비관, 생활고로 자살한 경우가 19건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 7월 4일 처지를 비관한 50대 남성이 야산서 목을 매 숨진 사건, 지난 5월 12일 집주인이 월세를 빌려주지 않는다며 50대 남성이 원룸서 분신 자살한 사건 등이 대표적 예다.
비리의혹 등으로 인한 경찰수사에 사업가, 공무원 등이 자살한 사건도 18건 보도됐다. 지난 7월 18일 경기 용인의 한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국정원 직원 임모(45) 씨 사례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대표사례다. 지난 8월 21일에는 해외 동성 성매매 혐의로 조사받던 50세 6급 공무원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키도 했다.
# 청년 “내 인생 왜 이래요” 인터넷 통한 동반자살
20~30대의 경우 자살동기가 확인되지 않은 사건이 33건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2~3명의 남녀가 모텔 등을 빌려 동반 자살한 몇몇 사건이 주목할 만하다. 최근 경찰청과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인터넷상 자살 유해정보’가 범람하고 있다는 발표를 내놨는데, 자살방법에 대한 정보, 독극물 판매정보, 자살 조장정보, 생명 경시, 자살동반자 모집 등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설명이다. 인터넷상 자살 유해정보는 지난해 기준 3.4배나 증가했다고.
신변비관이나 생활고로 고통 받아 자살한 사례가 15건, 부부·연인 간 갈등으로 자살을 택한 경우가 9건으로 뒤를 이었다. 지난 5월 25일에는 경기도 부천에서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자매 3명이 생활고를 이유로 함께 자살해 충격을 줬다. 지난 8월 21일 보도된 33세 취업준비생의 투신도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 외롭고 가난한 노인, 가정사·학업에 매인 10대도 세상 등진다
60대 이상 노인의 주요 자살동기 또한 20~50대와 같은 신변비관·생활고였다. 6개월 간 보도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지만 10대 청소년의 자살문제도 심각한 사회문제다.
지난 8월 30일 교육부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학생 자살현황’에 따르면 8월 17일까지 자살한 올해 초중고교생은 모두 61명으로 가정불화, 가정문제가 17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성적불량, 비관, 기타가 10명, 우울증, 염세 비관이 8명, 원인 미상이 7명, 이성관계가 3명 순이었다고.
# 떠나는 국민, 말리지 않는 나라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로 무려 11년째 손꼽혀왔다. (통계청에 의하면 지난해 자살사망자는 총 1만3836명. 하루 평균 37.9명꼴로 자살한 셈이다) 10년 전인 2004년에 비하면 6.5명이나 증가했다. 올해는 삶의 질 또한 최하위권인 것으로 밝혀져 불명예를 덧입었다.
대한민국이 ‘헬조선’인 이유. 단지 자살률이 높아서만이 아니다. 정치권에서 자살 문제에 도통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다. 그저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고? 천만의 말씀.
지난 11일 국회의원회관서 열린 ‘대한민국 국회 자살예방 정책 포럼’에서 조흥식 생명문화학회 회장(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자살률 추이를 보면, 1998년 외환위기(IMF)와 글로벌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에 급격히 증가했다”며 ‘경제위기로 인한 실업과 빈곤의 증가가 자살로 표출됐을 가능성’을 확신했다. 자살은 사회구조적인 요인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명백히 ‘사회적 타살’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보도분석에서도 10대를 제외한 나머지 연령의 주요 자살요인은 생활고 혹은 신변비관이었다.
통계청의 ‘상대빈곤율’,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임금 비율(제조업 기준)’ 그래프는 우리나라 경제구조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준다.
※ 상대빈곤율 : 소득수준으로 가구를 정렬한 상태에서 한가운데 소득(중위소득)의 50%에 못 미치는 가구의 비중을 나타낸 것.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4년 제1차 자살예방 5개년 종합대책 발표, 2009~2013년 제2차 자살예방종합대책 이후 아무런 대책을 세우고 있지 않다. 조 교수에 따르면 2016년 자살예방 관련 예산은 총 85억원으로 전년 대비 4억원 가량 줄어들었다. 이웃국인 일본이 매년 3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꾸준히 자살률을 줄여오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IT강국, 한류열풍 등 빛나는 이름을 업은 대한민국, 그리고 사그러져가는 국민들의 생명. 이 나라가 먼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
사진=생명의다리 홈페이지
표=통계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