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LINE// 예를 들어보자. 2달 여만에 800명에서 3500명이 됐다. 한 신인 보이그룹의 공연을 내 돈 주고 보겠다는 수요 변화다. 1일 50명, 1주일에 340명, 1달에 1350여명 꼴로 늘어난 셈이다.
이는 바로 데뷔한 지 1년도 안 된 세븐틴이 그린 비약적 상승곡선이다. 지난 14일 열린 이들의 앙코르 콘서트에서 집계된 수치가 3500여 명인데, 매진을 기록했다니 엄연히 따지면 수치는 그 이상이 된다.
연예계는 그렇다. ‘차근차근’이라는 착한 단어보다는, ‘갑자기 훅’ 이라는 도발적인 표현이 통하곤 한다. 세븐틴이 아니더라도 앞서 많은 아이돌그룹들이 드라마틱한 상승세를 누리며 인기의 맛을 봤다.
신인배우에게는 오디션, 단역, 조연, 주조연, 주연이라는 스텝이 있다. 그렇다면 아이돌은? 공연장을 그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팬카페, 팬클럽, SNS 팔로워 등등 반응을 감지하는 경로는 많지만, 실질적으로 돈을 움직이는 고급 상품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가장 보편적인 채널이 공연이기 때문이다.
연말이냐 연초냐, 매진이냐 아니냐, 하루냐 여러 날이냐 등등 판단이 필요한 조건들은 많지만, 체조경기장을 대여하는 자신감이라면 정상에 선 것으로 보자.
# 어느 정도면 될까? 500석부터 1만석까지
악스에서 올림픽홀로, 올림픽홀에서 실내체육관으로 들어가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먼저 공연장 별로 객석 규모가 얼마나 되나 살펴보자. 무대 크기를 어느 정도로 하느냐에 따라 수용 인원도 달라지기 마련. 하지만 공연장 자체가 상징하는 바가 있으니 무대장치가 들어가기 전 좌석 수를 기준으로 뒀다.
제일 작은 공연장은 홍대에 있는 클럽 공연장이겠지만, 그 다음은 이태원 언더스테이지, 용산아트홀, 예스24 무브홀 등이 소규모 장소로 꼽힌다. 1000명 이상 들어가는 곳은 악스코리아, 블루스퀘어 삼성카드, 상명아트센터 계당홀 대극장,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등이다.
5000석 이상인 곳 중에서는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 연세대학교 노천극장, 장충체육관,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 일산 킨텍스(진행 장소에 따라 차이 큼), 잠실 실내체육관,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이 자주 이용된다.
공연을 하기에 앞서 각 소속사에서는 큰 결단을 해야한다. 큰 공연장을 빌려 대대적인 홍보를 할 것이냐(물론 그 후에 상당한 초대권을 '뿌려야' 한다), 작은 공연장에서 매진을 기록하고 체면치레를 할 것이냐는 고민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 아무리 배포가 크다고 하더라도 손해보는 장사를 할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무리겠는데?’라는 걱정이 있지만 ‘그래도 해볼만한 싸움’이라는 판단이 설 때 의사결정을 한다. 즉, ‘공연장 크기=실감하는 인기’로 볼 수 있다.
# 첫 술에 배불렀던 포지셔닝
이미 ‘으르렁’으로 글로벌한 인기를 누리고 있던 엑소는 기세를 몰아 첫 단독 콘서트부터 체조경기장을 선택했다. 3일 간 이어진 첫 단독 콘서트는 팬들로 가득 찼다. 이후에도 꾸준히 체조경기장에서 공연을 열고 있다. ‘엑소플래닛#1 - 로스트 플래닛(EXO PLANET #1-LOST PLANET)’, ‘디엑솔루션(The EXO’luXion)’, ‘디엑솔루션 닷(The EXO'luXion -dot)’(공연 예정)까지 전 공연을 체조경기장에서 소화했거나 앞두고 있다.
비스트도 마찬가지다. 데뷔곡 ‘배드걸’에 이어 ‘쇼크’로 2연타를 날린 후 첫 콘서트 ‘웰컴 투 비스트 에어라인(WELCOME TO BEAST AIRLINE)’을 열었는데, 장소가 잠실 실내체육관이었다. 공연은 하루만 진행됐지만 의미있는 출발선이었다. 이후 앙코르 콘서트를 체조경기장에서 열면서 규모를 더 키웠다. 이듬해 시작된 비스트의 브랜드 공연 ‘뷰티풀쇼(BEAUTIFUL SHOW)’는 지난해까지 체조경기장에서 열리고 있다.
(*2014년에는 공연장 문제로 일산 킨텍스에서 진행됐다.)
# 아이돌의 역전 드라마
역주행 아이콘 비투비를 빼놓을 수 없다. 데뷔 3년만이던 지난해 대세가 된 비투비는 1만 석 공연을 매진 속에 마칠 만큼 극적인 성과를 손에 넣었다. 알고보니 노래도 잘하더라는 반전이 기폭제가 됐다. 스타트는 ‘서서브 보컬’ 육성재가 끊었다.
이들의 시작은 올림픽홀이었다. 2014년 ‘비투비 퍼스트 콘서트-헬로 멜로디(BTOB 1st concert - Hello! Melody)’를 열었는데, 1년 후 2배 규모 공연장에서 ‘본 투 비트 타임(BORN TO BEAT TIME)’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세븐틴은 지난해 12월 24일~26일 첫 단독 콘서트 ‘2015 라이크 세븐틴-보이스 위시(LIKE SEVENTEEN-Boys Wish)’를 용산아트홀에서 마쳤다. 다음 행보는 지난 13일~14일 올림픽공원 내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연 ‘라이크 세븐틴 - 보이스 위시-앙코르콘서트(LIKE SEVENTEEN - Boys Wish- ENCORE CONCERT)’였다. 데뷔 전 길거리 공연도 마다 않았던 세븐틴은 ‘혹독한’사전 트레이닝 덕에 빠르게 대중적 인기를 확보했다.
# 성장을 교과서로 배웠어요
방탄소년단은 이상적인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가고 있다. 악스코리아에서 시작해, 올림픽홀을 거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까지 이르렀다. 이제 남은 단계는 체조경기장 뿐이다.
데뷔 1년 만에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매년 다른 공연장을 더 많은 팬들로 채우는 성장세도 의미있다. 2014년 ‘방탄소년단 라이브 3부작: 방탄소년단 비긴스(2015 BTS LIVE TRILOGY: EPISODE I. BTS BEGINS)’가 올림픽홀에서, 2015년 ‘화양연화 온 스테이지’가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막이 올랐다. 올림픽홀에서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으로 옮긴 데에는 ‘아이 니드 유(I NEED U)’의 인기가 한 몫했다는 분석이다.
B.A.P도 마찬가지로 데뷔 1년만에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이후 개미처럼 근면하게, 소처럼 성실하게 공연 이력을 쌓아왔다. 2013년 2번의 공연(‘B.A.P - LIVE ON EARTH SEOUL’, ‘B.A.P LIVE ON EARTH SEOUL WANTED’)을 올림픽홀에서 열었고, 2014년(‘B.A.P LIVE ON EARTH SEOUL 2014’, ‘B.A.P LIVE ON EARTH SEOUL 2016 WORLD TOUR’)부터는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속사와 소송으로 공백이 있었지만 공연장으로만 보면 순탄한 여정을 걷고 있다.
씨엔블루는 ‘외톨이야’와 ‘러브’를 발표한 해 악스코리아에서 첫 공연을 열었는데, 이후 차근차근 규모를 키웠다. 2011년에 정규 1집과 리패키지를 낸 후 올림픽홀에서 ‘블루 스톰’을 개최했다. 같은 해 ‘블루 스톰’ 앙코르 콘서트와 ‘블루 나이트’ 서울 공연은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을 대관했다.
2013년부터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공연을 열기 시작했다. ‘2013 블루 문 월드투어 라이브 인 서울’을 시작으로 ‘2014 씨엔블루 라이브 캔트 스탑 인 서울’, ‘2015 씨엔블루 라이브 컴 투게더 인 서울’로 이어졌다.
# 마이웨이, 콘셉트 있는 드라마틱 전개
인피니트와 B1A4의 공연은 콘셉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10년 데뷔 후, ‘내거하자’, ‘BTD’, ‘나씽오버(NOTHING OVER)’, ‘파라다이스’로 높은 인기를 누린 인피니트는 2012년 첫 단독 콘서트를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었다. 그러나 다음 스텝은 악스코리아. 규모를 키워가는 분위기 속에서 이례적 선택이었다. 단, 공연이 5일 간 지속돼 동원 관객 규모는 이전과 비슷했다.
이후 ‘세컨드 인베이션-이볼루션(Second Invasion -Evolution)’, ‘2015 인피니트 세컨드 월드투어-인피니트 이펙트(2015 INFINITE 2nd WORLD TOUR -INFINITE EFFECT)’를 체조경기장에서 열었다. 오는 20일 같은 장소에서 ‘2016 월드투어-인피니트 이펙트 어드밴스’를 앞두고 있다.
B1A4는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BABA B1A4’)에서 시작해, 악스코리아(‘B1A4리미티드 쇼 어메이징 스토어’), 다시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더 클래스’)으로 옮겼다. 지난해에는 노천극장(‘어드벤처 2015’)에서 공연을 열었다. 큰 틀 속에서 보면 꾸준한 성장세다.
# 걸그룹, 소녀시대와 에이핑크
걸그룹에게 공연은 멀고도 험난한 길이다. 이렇다 할 성과를 찾기 힘든 가운데 소녀시대와 에이핑크의 2강 구도가 만들어졌다.
소녀시대는 체조경기장을 채우는 걸그룹이다. ‘지’로 빵하고 뜬 소녀시대는 2009년 ‘더 퍼스트 아시아 투어 콘서트(THE 1ST ASIA TOUR CONCERT)’를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었다. 이후 ‘2011 걸스제너레이션 투어’, ‘걸스제너레이션 네 번째 투어 -판타지아 인 서울’을 체조경기장에서 진행했다. 이 사이 일본에서 인기를 모았고, 멤버들의 유닛, 솔로 활동 등으로 개인 인지도까지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열었다 하면 매진이다.
에이핑크는 지난해에만 ‘핑크 파라다이스’(1월), ‘핑크 아일랜드’(8월) 두 번의 공연을 열었다. ‘핑크 파라다이스’가 올림픽홀이었고, ‘핑크 아일랜드’는 실내체육관이었다. 첫 공연부터 스케일이 남달랐던 에이핑크는, 신곡을 낼 때마다 차트 정상에 오르는 강력한 팬덤을 기반으로 공연에서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 매진보다 중요한 공연장의 의미
공연장은 외부의 시선이 가장 먼저 이르는 곳이자 아티스트의 위치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좋은 공연장은 아티스트 개인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공연장에 온다는 건 충성도가 높다는 방증이다. 팬덤이 늘어났다는 것에 대한 확인 방법이 있는데 앨범, 공방, 커뮤니티나 팬카페 수 등이다. 이 중 팬덤 확장을 확인하는 끝판왕 느낌이 공연이다.”(가요 관계자)
현재 체조경기장은 사실상 아이돌 공연이 이뤄지는 최대규모 장소다. “저 그룹이 체조(경기장)를 이틀이나 채웠다고?”라는 말은 해당 그룹이 현재 가요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체조 입성'에 걸린 시간은 얼마나 될까.
최단 시간은 빅뱅과 아이콘이다. 데뷔와 동시에 체조경기장에서 신고식을 치렀다. 대부분은 2년 만에 체조경기장에 입성했다. 인피니트(2010년 데뷔), 엑소(2012년 데뷔), 비스트(2009년 데뷔), 위너(2014년 데뷔) 등이다. 샤이니(2008년 데뷔)와 2NE1(2009년 데뷔)은 3년, 소녀시대(2007년 데뷔)는 4년이 걸렸다.
# 결국은 공연이다
공연은 팬과 아티스트가 소통하는 최적의 장소다. 3분 30초라는 한정된 시간에 쫓기듯 올라왔다 쫓기듯 내려가는 일반적인 음악 프로그램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이제는 공연형 아이돌을 육성하려는 소속사들의 움직임도 보인다.
"처음부터 공연형 아이돌을 생각했다. 그래서 플레디스만의 특별한 트레이닝을 했다. 음악 방송에서 보여줄 수 없는 끼들이 많은데 그 끼를 보여줄 공간이 필요했다. 아이들의 매력에 빠질 수 있게 하는 창구가 바로 공연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무대 노출을 빈도를 높여서 익숙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줬다."(플레디스 관계자)
아이돌은 공연으로 음악적 실력을 증명해보이기도 한다. 가창력, 퍼포먼스, 숨겨놨던 비장의 무기를 펼치는 장소다. 그래서 어설픈 프로모션보다는 제대로 된 공연을 만들겠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모든 멤버가 예능에 나가는 게 아니다. 이런 가운데 아이들이 가진 능력을 다 보여주려면 공연만한 방법이 없다. 모두가 원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소극장은 더 가까운 곳에서 호흡할 수 있다는 장점, 대규모 공연장은 화려하고 완성도 높은 무대를 꾸밀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다양한 방식의 공연장을 선택하는 이유다.”(울림 관계자)
이제 톱아이돌이라면 체조경기장 2회 공연은 꽉 채우는 수준이 됐다. 그렇다면 다음 스텝은 주경장이다. 서태지, 싸이, 이문세의 뒤를 잇는 국민 아이돌이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사진 = 뉴스에이드DB
그래픽 = 안경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