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의상감독에게 물었다! 숨겨진 디테일 5

기사입력 2016.08.12 10:18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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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이드 = 이소희 기자] 역사 속 인물이 주인공인 시대물에서 의상은 배우의 미모가 너무 빛나게 해서도, 관객의 몰입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 작은 귀걸이도 조심스러운 이유다.


“손예진 씨에게 미안하죠. 더 예쁘게 입혀주지 못해서... 그런데 관객들이 스타일에 시선을 뺏기는 순간 몰입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번 '덕혜옹주'에서의 의상은 배우의 연기에 20%만 도와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덕혜옹주’ 권유진 의상감독)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손예진 분)에 관한 이야기다. 1919년부터 1962년까지, 폭넓은 근대(近代)를 담아내기 위해 의상에 관한 역사적 고증은 필수, 그러나 요즘 입어도 될 법한 세련된 의상도 눈에 띈다. 


‘덕혜옹주’를 비롯해 ‘명랑’, ‘광해, 왕이 된 남자’, ‘국제시장’ 등 다양한 영화 의상을 맡아 온 권유진 의상 감독에게 물었다. ‘덕혜옹주’ 속 장면마다의 섬세한 디테일들, 무심코 보았던 그 의상에는 어떤 비밀들이 숨어있을까?



# 의상 속 숨겨진 디테일


1. 덕혜의 심리를 담은 보라색



영화 속 컬러의 힘은 상당하다. '덕혜옹주' 초반, 어린 덕혜(김소현 분)의 화사한 흉배, 장한(박해일 분)과 함께 있을 때 선보인 옐로, 핑크 코트는 덕혜의 따뜻한, 인간적인, 부드러운 심성을 표현한다. 그러나 덕혜가 상해 망명을 위해 일본군에게 쫓기며 바닷가를 내달리는 신에서는 톤 다운된 체크 코트와 보라색 스커트가 마구 휘날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채색 계열에 톤 다운된 보라색으로 포인트를 주거나 클래식한 체크 패턴을 주로 썼습니다. 덕혜가 느꼈을 ‘결국은 혼자다’, ‘혼자 해내야 한다’라는 고독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보라색이 제격이었죠.” (권유진 감독)


보라색처럼 처연한 컬러는 없었다고. 반면, 박해일과 라미란 등 주요 인물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손예진보다 더 어둡고 무거운 컬러를 선보인다.



보라색은 주요한 장면마다 쓰인다. 훗날 덕혜가 딸과 함께 귀국을 시도하는 장면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디자인의 보라색 코트가 등장한다. 어쩐지 복순(라미란 분)의 옷 같기도 한데, 이것은 세월의 흐름과 변함없이 어두운 그의 일상을 담아낸다. 


특히 마지막 장한과 덕혜가 귀국하는 장면 속 보라색 퍼 코트는 모든 의상 중 가장 사실에 입각한, 역사의 고증을 완벽히 거친 의상이라고.


“마지막 옹주의 귀국 장면만큼은 허진호 감독님이나 저나 실제 옹주 모습과 똑같은 싱크로율을 원했어요. 의미 있는 사건이고 제 기억 속에도 뜻깊게 새겨져 있는 모습이니까요. 모자부터 신발까지 디테일 하나하나 똑같이 하려고 노력했죠.” (권유진 감독)



2. 케이프 코트



코트 선택 하나도 전략적이어야 한다. 한 겹을 더 껴입은 듯한 케이프 코트는 덕혜가 일본의 강압에 의해 연설을 하게 되는 장면, 어머니 양귀인(박주미 분)의 사망 비보를 전해 듣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케이크 코트에도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덕혜는) 기구한 삶을 살잖아요. 죽지 못해 사는 여자가 아니었나.. 독살의 위험 속에 늘 보온병을 챙겨 다니니 적국의 햇빛도, 물과 공기를 마시는 것도 싫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당대 유행하기도 했던) 모자를 씌우고 앞섶을 여미거나 높은 칼라의 옷을 입혔죠. 케이프 코트로는 갑옷처럼 자기 보호적이고 절제된 느낌을 표현하려 했어요.” (권유진 감독)



손예진이 칼라를 풀 때는 오직 도망가는 장면. 바닷가 도망 신에서 권 의상감독은 긴장감은 높이면서 손예진의 절박한 모습이 고스란히 표현되길 원했다. 그래서 코트를 풀고 허리끈을 뒤로 묶어 코트 자락이 한껏 휘날릴 수 있도록 했다.



3. 입을까? 벗을까?



친일파의 표상 한택수(윤제문 분)는 일본이 패망하자 입국이 거절된 덕혜 앞을 호기롭게 지나간다. 이때 한택수는 한겨울 모두가 꽁꽁 싸매 입기 바쁜데 혼자만 코트를 입는 둥 마는 둥 어깨에 걸치고 등장한다.


“한택수의 연미복은 높은 계급과 부를 상징해요. 당연히 윤택한 삶을 살았겠죠. 사실 그는 선착장에 오기까지 코트도 필요 없었을 겁니다. 얼마나 따뜻하게 왔겠어요. 춥고 배고픈 것을 모르는 인물이니까 외투는 가볍게 걸쳐주기만 하면 됐죠. 거들먹거리는 모습도 더 부각되고요.” (권유진 감독)


친일파와 덕혜의 남편이자 대마도 번주의 아들 소 다케유키는 늘 화려한 연미복 차림. 실제 당시 공식 석상에서 유니폼처럼 꼭 입어야 했던 의상이란다. 윤제문은 변함없는 화려함을 고수하는 가운데 다케유키는 달랐다. 그는 덕혜를 향한 안쓰러움과 그리움, 연민 등을 안고 있는 인물로 노년기, 다소 방어적인 느낌의 연미복을 벗고 편안한 니트를 입는다.



4. 돋보기안경



노년 연기 전문가 박해일에게 세월을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장한이라는 인물은 덕혜와 함께 상해로 망명하려다 붙잡혀 갖은 고문을 당하고, 전쟁터에서 총받이가 될 뻔하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인물이다. 온몸이 만신창이일 터. 권 감독은 생각했다. ‘시력이라고 좋았을 리가 없지.’


20여개의 안경이 준비됐다. 도수, 프레임, 크기 별 갖가지의 안경들은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겪어 온 장한을 얼마나 표현해내는지 시험을 거쳤다. 


“가장 도수 높은 돋보기안경이 선택됐죠. 그래서 박해일 씨 눈이 늙어서는 더 커집니다. 하하. 안경은 클로즈업 장면 때만 쓴 게 아니라 촬영 내내 썼기 때문에 박해일 씨가 굉장히 어지러워했습니다. ‘컷’ 소리가 날 때마다 부랴부랴 안경부터 벗더라니까요.” (권유진 감독)



5. 여성지에서 탄생한 의상



권 감독은 시대물 작업을 시작하면 평소 스크랩해둔 자료와 함께 옛 여성지, 신문사의 기성복 광고들을 눈여겨본다고. 과거 광고 모델들은 대부분 자신이 가진 옷 중 가장 최신 유행 아이템을 직접 가져와 촬영했기 때문이다.


“시대물은 고증을 거쳐야 하고 사실에 반하지 않기 위해 많은 부담감을 느끼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지 다큐멘터리가 아녜요. 스토리와 역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다채로울 수 있죠.” (권유진 감독)


이번 ‘덕혜옹주’ 의상 제작 기간은 총 3개월. 손예진의 케이프 코트를 제외하고는 고종의 곤룡포를 포함해 모두 자체 제작 의상이다. 패션은 돌고 도는 것. 양복의 유행 주기는 보통 20년 단위로 핏이 좁아졌다 넓어지고, 서양의 의복 문화가 일본에 영향을 끼치기까지 1년 정도가 소요됐다고 본다면, 당대 패션 트렌드를 유추해볼 수 있다.



# 스크린이라는 런웨이



“장한이 정신병원에서 덕혜를 만나는 장면은 시나리오만 읽고도 눈물이 너무 나서.. 촬영 전, 의상 프레젠테이션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감정이 몰입됐어요. 이런 장면들은 의상 준비하기가 참 힘듭니다. 극장에서 보니 또 슬프더라고요.” (권유진 감독)


의상 감독에게 스크린은 하나의 런웨이다. 배우가 자신이 생각했던 옷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내는 게 관건. '덕혜옹주'에서는 한복과 양복이 공존하는 시대적 배경과 한 인물의 노년까지 그려내야 해서 더더욱 힘들었다고.



“이병헌, 정우성, 박해일, 류승룡 씨는 옷의 장점을 가장 잘 표현해내는 배우예요. 특히 이번 ‘덕혜옹주’에서 손예진 씨는 많이 내려놓은 것 같았고, 많이 몰입한 것 같았어요. 제가 준비해놓고도 ‘이것은 너무 했나’ 싶었던 의상들도 불평 한마디 없이 입어줬죠. 실제 덕혜옹주라면.. 상상했던 것들을 완벽히 구현해냈어요. 너무 만족합니다.” (권유진 감독)



그래픽 = 안경실

사진 = '덕혜옹주' 스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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