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이드 = 윤효정 기자] TV를 틀어보자. 꽤 많은 미니시리즈의 주인공이 미성년자 배우다. 김유정은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의 여주인공이며, 최근 종영한 tvN '싸우자 귀신아'는 김소현, JTBC '마녀보감'은 김새론이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아역배우로 시작한 이들이 언제 이렇게 훌쩍 컸는지 흐뭇하지만 '키스신'이라는 단어로 장식되는 드라마 리뷰 기사들을 보면 흠칫한다. 미성년자 배우들의 연기는 어느 수위가 적정한걸까. 배우는 성인이지만 캐릭터가 10대일 경우에는 뭐가 달라질까. 이 궁금증, 풀어보자.
# 10대 배우, 연기 수위 명확한 기준은 없습니다. 왜?
결론부터 말하면 미성년자 배우라서 어떤 입맞춤은 되고 어떤 입맞춤은 안 되고, 아주 '정확'한 기준은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안 중 35조 '성표현' 조항과 45조 어린이 청소년에 관한 규정(출연)이 있지만 이는 아주, 아주, 상식적인 기준에 기반하고 있을 뿐이다. 즉 방송이 나온 후 '나만 불편해?'라는 반응이 있을 경우에 사후 조치가 이뤄진다.
'어린이 청소년을 성폭력 유희의 대상으로 묘사'해서는 아니되며 내용 전개상 불가피하더라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제35조 성표현)
'방송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그 품성과 정서를 해치는 배역에 출연시켜서는 아니 되며 내용 전개상 불가피한 경우에도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제45조 출연)
"(방송 전에) 심의도 없지만 심의를 할 기준도 없습니다. '사전' 심의가 없기 때문이죠."(방송 관계자 A)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대중문화에 대한 '사전검열'이 없다는 것이 보다 상위의 원칙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더 쉽다.
노출이나 애정신에 대해 '성 표현'에 대한 조항이 있지만 미성년자 배우에 대한 별도의 조항은 없다. 2012년 신설된 조항 중 '신체가 과도하게 노출되는 복장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출연시키면 안 되며 선정적인 장면을 연출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 있는데 당시 음악방송에서 미성년자 아이돌의 과도한 의상이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미성년자 '역할'일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기본적으로 흡연, 음주, 부적절한 장소에 출입하는 것을 묘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지만 내용 전개상 설득력, 표현 수위에 대한 변수가 있다. 결국 방송 내용이 시청자가 보기 불편한 정도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 사례로 보는 10대 연기 수위
- tvN '감자별2013' - 주의
2013년 tvN '감자별2013QR3' 여진구의 키스신. 당시 미성년자였던 여진구가 꽤 수위 높은 키스신을 소화해 충격 아닌 충격을 줬다. 아역배우 이미지가 강했던 여진구의 '폭풍성장'이라며 화제를 모았지만, 반면 미성년자 배우가 이렇게 진한 키스신을 해도 되는지 갑론을박 논란이 불거졌고 방심위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다.
- SBS '뿌리깊은 나무'(2011) 미성년자 욕설 - 주의
10대 배우가 욕설을 하는 장면이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주의를 줬다.
- tvN '응답하라1988'(2015) 미성년자 흡연 - 권고
극중 미성년자 역할인 최택이 흡연을 하는 장면은 권고조치를 받았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흡연, 음주하는 장면을 묘사해서는 안 된다'라는 조항에 따른 조치다.
- KBS '드림하이'(2011) 미성년자 성희롱 - 주의
'드림하이'는 학생들의 성장담을 담은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를 강제로 납치하거나 협박하는 장면, 교사의 누나가 남자 고등학생들의 몸을 더듬는 장면, 10대 학생들이 저속한 표현을 사용하는 장면 등이 문제가 됐다.
- MBC '보고싶다'(2011) - 권고
마약을 흡입한 납치범이 중학생인 수연(김소현 분)을 성폭행하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 폭력 묘사가 구체적이고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에 방송된 것이 부적절한 점, 해당 장면을 연기한 청소년 출연자의 정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KBS '드라마스페셜 중학생 A양'(2014)- 의견제시
극중 고등학교 여학생(이열음 분)이 남학생(곽동연 분)의 손을 끌어와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댄 장면이 논란이 됐다.
# '나만 불편해?' 시청자 반응이 기준
매우 애매모호하다고? 결국 기준은 시청자들의 의견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카메라 앵글에 따라, 표현 방법에 따라 시청자가 받는 '느낌'은 달라진다. 때문에 '표현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제작진의 의무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방송 이후에 모니터링 → 회의 → 제재의 과정이 진행된다. 프로그램이 전파를 탄 뒤 시청자들이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여 방심위로 민원을 제기하거나 해당 내용이 논란이 되는 경우 안건으로 상정되고, 또 방심위 자체 모니터링 과정에서 해당 방송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될 경우에 회의를 거쳐 사후 제재의 수위를 결정한다.
권고, 주의, 경고, 사과, 의견 제시 등 다양한 사후 제재가 있는데 이는 방송사업자 선정에서 감점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준을 어떻게 정할 수 있겠어요. 앵글 각도나 초 단위로 기준을 정하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요. 하지만 '이 정도는 되지 않을까?' '이 정도는 조금 위험한데..' 등 '감'이나 '느낌'에 의존해서 촬영 수준을 정하는 것도 되게 애매하기는 해요."(배우 기획사 관계자 B)
# 또 하나, 지켜져야할 것.
10대 배우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점은 또 하나 있다. 바로 10대 배우가 10대로서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다. 촬영, 즉 노동시간과 더불어 학습권과도 관련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동연예인 인권보호를 위해 내놓은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등에 따르면 15세 미만 아동연예인의 연예활동을 주당 35시간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또 본인, 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 사이 연예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조항이 지켜지기는 힘들다는 것이 현장의 반응이다. 쪽대본으로 인한 밤샘촬영이 계속 되는 상황에서 10대 배우의 스케줄을 맞게 촬영 순서를 조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10대 배우의 소속사나 가족도 상대적으로 '을'의 입장이기 때문에 휴식 시간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촬영장에서는 1분 1초가 급한데 배우가 아직 중학생, 고등학생이라서 밤에는 촬영을 못 한다고 하면 어느 촬영장에서 이걸 이해해줄까요? 사실상 어려운 일이죠."(배우 기획사 관계자 C)
제도가 마련이 됐음에도 관계자들의 양심과 출연자들의 '눈치'에 따라 달라지는 권리인 셈. 10대 배우를 찾는 작품이 많아지고 있는만큼 이들의 합당한 권리와 이를 보장할 수 있는 확실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사진 = tvN '응답하라1988', tvN '감자별2013', tvN '싸우자 귀신아', MBC '화려한 유혹', KBS '중학생A양' 캡처, 뉴스에이드DB